하재화河載華

하재화河載華 1860년哲宗 11 – 1937년
 자字는 복영復榮 호號는 여인헌與人軒이니 송정松亭 수일受一의 후손이고 함청헌 이태以泰의 손자이며 성운聖運의 아들이요 재곤載崑의 아우이다. 1894년에 생원生員시에 합격하였고 천품이 강직하고 효제충신을 생활의 신조로 삼았으며 부귀 현달顯達을 구하기보다 평생 동안 자기 수양修養을 위한 학문에 정진하였고 향내 유림행사에 솔선하여 예禮와 법도를 전수하였다.
 망국 후 국권회복을 위하여 그는 1919년에 3. 1운동이 일어날 무렵 유림에서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서명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니 세칭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이다. 요지는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명실상부한 유림의 항일 운동이다. 공公은 1927년 1월 20일 독립운동 단체인 신간회新幹會창립준비 발기인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1973년 서울 남산에 건립한 파리장서비巴里長書碑 비문에 공의 이름 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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