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목의 진주하씨

丹牧里의 진주하씨는 비봉산 아래 중안리에 세거하다가 15세기 중엽에 대여촌으로 이주하였고 15세기 후반에 다시 沙竹里(단목)로 이주 하였다. 丹牧里의 洞名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옛적에는 北村 或桐谷 沙竹里 等으로 呼稱했다고 전해진다. 丹牧이란 牧丹을 聯想하는 地名으로 그 地形은 틀림없는 모란꽃을 닮았다.

北에서 梧坊산이 솟아있고 南으로는 月牙山이 둘러 있으며 德川江 南水는 東南으로 흘러 洛東江에 合流한다. 모란꽃을 상징하는 산세는 완만하고 突兀한 丘壑에는 瓦家로 채워져서

한 幅의 繪畫를 보는 것 같은 아름다운 운치를 간직한 마을이다. 이러한 천혜의 지리적 환경 속에서 우리 선인들께서 베푸신 仁德은 天上地符로 調和를 일으켜 子子孫孫 順坦한 길을 걷게 하였고 수많은 苦難과 史禍와 전란에도 순화된 忠孝精神의 바탕에서 能히 克服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믿으며 오늘의 번영과 아울러 더욱 빛나는 來日을 期約할 것이다.

巨源(兵判公)으로부터 五代 通䄚問通贊公 諱 起龍 忠武衛副司果公 諱 鮪를 지나 牧使公(諱 禹治)께서는 아들 承仕郞公 諱 淑과 陽菴公 諱 活 두 아들을 낳으시고 승사랑공께서는 진평군 諱 魏寶를 낳으셨고 晋平君께서는 열한분의 아들을 낳으셨는데 諱 恒(松罔公), 諱 忱과 恪(進士), 諱 惕, 諱 澄(滄洲公), 諱 憬(參奉公), 諱 惺(竹軒公), 諱 愃 과 恂, 諱 忭(丹洲), 諱 悏(丹池)이다.

단목마을입구에서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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