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백(河鎭伯)

字는 子樞요 號는 菊潭이다.

세살에 글자를 들으면서 잊지 아니하였고 여섯 살에 능히 賦詩를 하였다. 正廟 庚戌년(정조14년 1790)에 進士에 합격하고 다섯 차례나 入侍하였으니 대개 異數이었다. 丁茶山 若鏞이 詩를 지어 준일이 있었는데 이르기를 「丹山의 한 구비에 그윽한 곳 살고 있어, 白首로 궁구한 俓을 누구에게 물었던가?(丹山一曲幽居, 白首俓問孰如」

고요히 앉아 또 찾는 것은 顔氏(顔子)의 樂(顔回의 清貧樂道를 가리킴)이었고 殘年이 된 때에 모두 붙인 것은 晦翁(朱子)의 글이었네.(靜坐且尋顔氏樂 錢年都付晦翁書)

澗阿 : 골짜기에 있는 내와 언덕)의 日月속에 高枕을 베고 있어 京洛(서울)의 塵埃라도 소매 자락에 물들지 않으리(澗阿日月회惟高枕 京洛塵埃不染裾)라 하니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림자를 비춘 것이다」라 하였고 柳相國 厚租가 이르기를 「두 번이나 薦炎에 들어갔고 이름이 選部에 올랐는데 그의 蘊抱(온축과 포부)를 베푼 것이 아니라면 어찌 世道를 한결같이 개탄할 것이 아니겠느냐?」라 하였다.

文集이 있어 刊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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